CLOCKWIZ day

EASY communication way with my friends now and myself in the future.

2006-05-31

승봉도 여행


지난 5월 27일,28일에 승봉도 여행을 문창,용석,진현네 와 우리가족포함 총 16명이 주말을 이용하여 다녀 왔다. 제법 큰 규모의 여행이었다.
흔히들 "세상에 쉬운일이 어디있냐?" 또는 "무슨일이든 안 힘든일은 없다" 고들 이야기한다.

군사학을 일군 중요 인물중 한명인 조미니는 "전쟁개론"에서 전쟁의 영구 불변한 전쟁의 기본원칙과 원리를 밝히려 했는데 전쟁의 양상을 정태적인 것으로 파악 했으며 전쟁의 계획과 준비에 중점을 두고 실행에는 무관심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군사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을 "물리적 힘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전쟁을 정치의 도구로 보았고 다이나믹한 것으로 파악 하였으며 실행에 주목하였다. 실행적 측면에서 "마찰"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계획에 없었던 다양한 요소가 현실에 튀어나오는 것을 말한다.

대규모의 인원이 여행을 하는 유사한 경험이 나나 같이 가는 가족들에게 전무하다 시피 했기 때문에 떠나기 전부터 다양한 궁금증및 요구사항들 돌출 되기도 했는데 나는 스스로를 volunteer중 한명으로 생각하고 다른 volunteer의 참여를 기대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출발하는 날은 비교적 먼거리를 이른 아침에 서둘러야 하는 데다 비까지 제법 굵게 내렸고 예정된 집합 시간에 모든 팀들이 on-time 하지 못한 관계로 출항전에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마찰"은 극대화 되었었다.

결과적으로 여행의 참가자들이 첨겪는 여행의 불편함을 큰 불평없이 받아들이고 긍적적인 참여의 자세를 보여주어 마찰은 여행의 의외성을 높여주고 더 모험적인, 그래서 기억에 남는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조미니는 내게 여행 계획이 더 철저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라 했겠지만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상황을 도상에서 도출하여 대책을 마련 할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실행이 성공을 축하해 주었다.

궂은 날씨나 갑자스런 병, 원할지 못한 의사소통등의 마찰은 실행에 있어 항상 수반되며 이런 연유로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란 얘기를 흔히 듣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난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클라우제비츠의 개념을 나의 현실에 투영해 볼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하번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은 확인 해야 하는 것이며 의사결정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교훈의 확인 이었다.


비내리는 가운데 배는 출항을 하였고 심장은 고동치고 팔은 떨렸다.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 탄 대부호에 난 뒤에서 두번째 사람이었고 혜림이는 첫번째 사람이었다. 섬도 보이고 갈매기도 보이는 안도감과 더불어 비로소 즐거운 여행 기분이 되었다.

승봉도에 도착해 첫번째 행사는 빗속의 산책이었는데 비는 좀 가셔들고 안개를 자욱한 길은 신비로운 분위기 였다.
현서가 헨델로 보이고 효정씨는 숲속의 마녀로 보이는 상상을 했다. "현서야 팔을 내밀어 보렴.. 아직은 말랐구나"
빗속을 뚫고 목섬으로 산책을 떠나는 일해들의 뒷모습이 제각각이다.
목섬앞 해변에 도착하였다. 해당화 건너편에 진현이가 뭔가 상념에 젖은듯 산책을 한다. 여행기간 내내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상념에 젖거나 아기를 돌보는 진현의 모습 둘 중 하나였다.
안개 저편에 작은 고깃배가 떠있는 모습이 소박하다면 활기찬 어린이들이 입고 있던 비옷의 모습은 화려 했다.
바닷가의 도착한 어린이들이 조심스레 바닷가로 호기심 어린 발자욱을 내딛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안개에 싸인 바닷가는 뭔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킬 것 같기도 했는데 예전에 난 이때 담배를 꺼내물었을 것 같다.

솔잎끝에 빗방울이 대롱 대롱 매달려 있다. 방수되는 바디가 언젠가는 내손에 들어 올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은 너무 비싸다. 천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촛대바위 까지 가서 이사진을 찍고는 한번 물먹은 경험이 있는 카메라가 걱정이 되어 자켓안으로 대피를 시켰다. 그 다음 억수 같은 비 가 퍼부었다. 우산이 북이 되었고 수많은 물방이 바닷물의 튀겨 내었다. 이상한 격정이 밀려 오는데 혜림이가 바닷물 색깔이 너무 예쁘다고 소리 쳤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황효정씨도 혜림이와 같은 말을 했다.

빗소리에 잠이 들고 깬 아침은 충격적이었다. 이건 지난 여름 파타야에서 본 바닷가 아닌가! 오~ 칙칙한 센티멘탈을 가라, 오늘은 딜라이트 할 것이다. 예~~.
아이들은 벌써 바닷가에 자리잡았다. 바지락도 줏어오고 작은 게도 잡아 왔다. 여행의 재미와 흥분이 커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내내 문창씨는 밥을 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부지런한 코알라라고 했던가. 문창씨의 거침없는 요리덕분에 모두들 잘 먹었고 잘 먹어서 행복했다. 아침은 김치찌게였다.
모래놀이터를 찾아가는 현서의 발놀림이 앙증맞았다.
아름다운 구름아래 섬마을 논이 자리하고 있었다.
목섬에서 촛대바위로 넘어가는 길을 문창씨가 개척을 했다. 그 고개 정상에서 바라본 서해 바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왔다.
촛대 바위는 바닷가에 제법 붙었있어서 해수 침식의 영향이었는지 아주 표면이 거칠었다.
문창씨가 촛대 바위에서 모델이 되어 주었다.
진현이가 모래사장에 일부가 되어있다. 쭉 상념에 젖은 모습이었다.
조용한 해변에 연인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풍경엔 사람이 작게나마 들어가면 더 좋은 것 같다.
이 장면을 파인더로 보면서 서편제의 그 유명한 장면을 떠 올렸다. 진현이 소리를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진지한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곧게 펴지지 않은 논둑의 경계가 더 풍요롭게 보인다. 이리저리 부정형의 모습이 난 바둑판 같은 논의 모습보다 좋다.
민들레를 찍기 위해 문창씨가 서슴없이 몸을 던졌다.
연수가 좀 포토제닉한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어린이 들은 모래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다. 용석이는 그늘막에서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고 부인은 애들 곁을 떠나 용석한테로 발거름은 옮기고 있다.
얕은 바다라 성원이 처럼 아주 어린 어린이들도 안심하고 놀 수 있는 이일레 해수욕장은 뻘이 없어 깨끗했다.
한 낮 태양이 강해 콘트라스가 매우 컸다. 이 사진에서는 반사광으로 경은이 얼굴이 어둠에 묻히지 않았다. 배경도 담고 얼굴에 노출도 맞은 거의 유일한 사진이다. 반사판을 들어줄 사람?
첫째 따라하기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의 표정이 천진난만 하다. 형준이는 첫찌가 되면 마구 뛰어서 많은 어린이들이 기권을 했다.
용석이네 가족사진.
진현이네 가족사진.
문창씨가 찍어준 우리집 사진.
오고가는 배에서 갈매기에게 보는 즐거움이 있다.
갈매기들은 배를 따라온다. 새우깡에 중독이 된것 같다.
이렇게 해가 졌고 그래서 하루가 갔다. 여행도 끝이났다.(오이도)

Appendix - [여행 기록 - 데이터]
1.모이는 곳: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http://www.myseungbongdo.co.kr/, 032) 886-7813)
2.모이는 때: 2006년 5월 27일 09:00am
3.준비물 :
1) 쌀3끼분(자기 가족 먹을 분량), 반찬 2가지 이상
2) 점퍼, 슬리퍼, 돗자리, 후래쉬,
3) 세면도구
4) 기타 개인 필요 물품
4.자는곳 : 이일레민박 032-832-1034, 011-238-5045 원룸3개 (http://www.iilre.com/)
5.결산


6.시장보기


7.참고
-http://www.myseungbongdo.co.kr/ - 인터넷안내
-http://blog.empas.com/mcchae/10221043- 채문창 홈페이지.

8. 여행후기
김용석 입니다.

우여 곡절끝에 여행에 합류하고, 가는날 아침에 비가 좀 많이 와서 걱정도 됐었는데, 갔다와서 보니까 참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제 집사람이랑 애들도 정말 즐거워 하더군요.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지금도 목이 까끌까끌 아파서 자꾸 크림을 발라주고 있는데 (목에 깜빡하고 썬크림을 안발랐음. 흠..) 이 마저도 추억이 되겠지요.

여행 준비하느라고 고생하신 문창씨와 창환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말 하고 싶습니다.
창환은 단지 '제안자'라고 우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여행을 책임진 우리의 리더 였습니다. 훌륭한 리더 덕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문창씨는 식사 준비에 천부적(?) 자질을 타고 나신 것 같더군요. 음식 정말 맛있었습니다.
손도 꼼짝 않겠다던 진현이도 구석구석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 졌습니다.
같이 식사준비 한다는 핑계대고 가서부터 오기 전까지 계속 마셨던 맥주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원래 맥주만 마시면 좀 배가 살살 아프고 그랬는데, 여행 기간 도중에는 신기하게 전혀 아니더군요.

개인적으로 좀 바쁜 상황인데, 맑은 정신과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 기분이 좀 희미해 질 때쯤 또한번 같이 여행을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김용석

Me too.
정말 즐거웠고, 배타는 걸 걱정했던 내가 우스웠음. 용석이 말대로.. 애들이 정말 좋아해서.. 좋았음.. 그렇게 징하게 모래놀이한거..
내생각엔 처음인듯...

To 창환,문창: 너무 고생 많았고, 덕분에 14명이 즐거웠던게 아닐까 싶음... 다음에 또...크크
To 용석: 존재 자체가 많은 위안이었음... 흐흐.. 담에도 빠지지 말고...

결국 난 거의 손도 꼼짝안했음.
머.. 다들 나서서 다 하니 내가 할게 별로 없드만... 그래도 내가 했던 첫날 두끼 밥이 맛있지 않던?? 캬캬..

짐을 제대로 못든게 많이 걸렸는데, 흑... 이젠 늙은건지..오늘 날이 흐려 그런건지..또 도지는듯.. 오늘 운동 스킵..
또 한가지 아쉬움은 넘 많이 먹어서... 한달 운동한게 다 날라간게 아닌지..우려됨...

아.. 너무 자주는 어렵겠지만.. 일년에 한두번은 이런거 하면 좋겠다.... 준비야 돌아가면서 하고...ㅎㅎ

그리고 어젠 길이 그렇게 많이 막히지는 않아서 8시 전에 집에 들어왔다... ㅎㅎ

즐건 한주 되길..모두
- 윤진현

모두들 잘 다녀 왔다니 행복합니다.
제안을 먼저 한 사람으로써 다행이기도 하구요..
이번 여행이 즐거웠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 다면

떠나는 날 비가오는 데 배를 촉박한 시간내에 많은 짐을 가지고 타야 했던거,
배의 침몰 걱정(?) 과 같은 극적 요소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16명의 여행 멤버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티내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준 것이겠지요.
특히, 여행은 먹고, 자고, 보는 것이라는데 잘 먹게 해준 문창씨의 음식 솜씨가 한몫 했지요..

(아~~~ Coating된 smoke 가 더 큰 역할 이었을 겁니다..^^)
오늘 하루 종일 짬을 못내서 이제야 메일 확인하고 후기를 올리는 데요
좀 더 긴 여행기는 제 블로그에 올려 볼려구 합니다. (오늘은 안되구.. 내일이나.. 최악의 경우 모레…)
한동안 업데이트를 못했는데 잘된 일이군요.

일년에 2번 정도 북적되는 여행도 괜찮을거 같군요.
예산이 좀 오버가 되었는데 회비 정산은 조만간 메일로 날릴 께요..
- 이창환

승봉도,
이름도 생소한 섬,

제주도,영종도,강화도 말고는 처음 가는 섬 여행이라 반신반의 했는데
그리고 갯벌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헌옷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참 아름다운 해변과 신령스러움까지 느껴지게하는 산책길은 오랫동안 머리속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비내리는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정말 몰랐거든요
비가 온다고 속상해 했는데 토요일날 내린 비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멋진 장소를 소개해 주신 지훈이 아빠 정말 고맙구요
(앞으로 저희 가족 여행갈때도 좋은 여행지를 꼭 소개 받고 가야 할까봐요)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불편함, 색함 없이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게 되어서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가은이 경은이도 우리 가족들만 갔던 여행보다 무척 즐거웠다고 하네요
역시 아이들은 여럿이 어울리며 놀아야 하나봐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더 은 여행을 함께 하면 좋을 듯합니다.
이번 주는 더 행복한 하루가 될 듯합니다.
-이혜림
우선 이번 여행을 주선한 창환씨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어려운 발걸음 해 준 용석씨 진현이도 모두 고맙고
엄마들과 아이들 모두 즐겁게 잘 다녀와서 무척이나
추억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이 추억을 엠파스가 망하지 않는한 계속되도록,
(실은 이중 삼중으로 백업하고 있으니 사진 분실 염려는 놓으십시오~ ^^)
아래의 블로그에 올려 놓았습니다.

시간나실 때, 시간의 역순이니 아래부터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시한번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추신: 제안!
한달에 2만원씩 계(회비)를 걷어서 일년에 한두번 이런 행사를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요?
앞으로 아이들도 계속 커 갈텐데, 한두번 이런 추억을 같이 공유할 식구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큰 재산이라 생각합니다.
뭐 행사는 저와 창환씨가 도맡아서 할 테니 걱정마시구요.
음... 그리고 모임 이름도 만들면 편할거 같은데...
의견들 있으시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22주] 네가족의 2006/5 승봉도 여행기록 - 출발,점심 [1]
-채문창

뒤늦게 답글을 보내네요... 정신이 좀 없어서.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일요일 느즈막히 배가 있어서 아이들이 신나가 해변에서 놀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여기 저기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한곳에서 오래 머문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일요일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좋았고..
토요일은 고생을 무지 했지만, 천둥치고 비가 쏟아지는데 , 바다에 파도가 사라지고 비가 물을
두드리기만 하는데... 바닷색깔은 또 왜 그리 이쁜지.... 공포와 황홀경의 공존.... ㅎㅎㅎ...
식사도 다들 너무 잘들 만드시고, 또 잘 먹고, 잘 정리하고... 참 대단한 단체여행이었어요.
애들도 말도 잘 듣고 잘 놀고...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어서 수고하신 여러분들께.. 무지
감사드립니다.
담에 또 가요...
-황효정

2006-05-09

식구들과 다시 오르다

(2/2)

아침을 먹고 싫다는 가은이와 경은이를 달래서 데리고 집사람과 함께 다시 나섰다. 날씨가 여전히 맑았다. 자연은 좋은 교과서라 한다. 글로 배우는 것 보다 몸으로 배우는 것들이 오래 간다고들 한다. 좋은 날씨아래 경관을 식구들과 같이 하고 싶은 것에 더해 가은이 경은이 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다. 그런 구경을 하려면 땀를 흘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걸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두 딸아이들이 경쟁적으로 불평을 늘어 놓기 시작한다. 아침에 호연지기를 길러서인지 적당한 때에 산들 바람이 불어 와서 인지 딸들의 불평이 귀여운 지저귐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딸들이 몇번씩 주저 앉고 걷기를 반복하다 계곡 건너 잘 생긴 바위가 펼쳐지고 저아래 산밑에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청학리가 내려다 보이는 마당 바위에 도착했다. 때 마침 산들 바람이 불어 온다. 카메라를 배낭에서 꺼내 들었다. 바위은 평평한듯 아래로 낭떨어지를 만들고 있었다. 프레임을 잡으며 뒷걸음질 치니 딸들이 소리를 지른다. 아빠가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줄만 알고 있었다. 떨어진건 아빠가 아니고 카메라에 쏟아진 물인것을 그 들은 모른다. 배낭 속에서 뚜껑이 덜 닫힌 물병에서 떨어진 물이 카메라를 목욕을 시킨 것이다. 자동 촛점이 동작이 안된다. 그리고 이내 조용히 동작을 멈추었다. 카메라가 사망전 남긴 사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아쉽지만 봄나들이의 추억과 예쁜 딸들의 모습은 마음에 담아야만 한다.



널찍한 바위에 앉아 산들 바람과 경치를 즐기며 새하얀 뭉게 구름을 구경한다. 가은이와 경은이가 구름의 모습이 슈퍼맨에서 잠든 양으로 변했다는둥 구름을 보고 흥분하다 시피 떠들어 댄다. 가은이는 벌은 물론 이고 파리도 무서워 한다. 벌레라면 까무러 칠 지경이 된다. 난 항상 그런 순간 마다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고 얘기 해주지만 공포에 질린 딸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 올리가 없다.
엄마가 가은이 어깨에 붙은 벌레를 손가락 위로 옮긴다. 가은이의 비명이 그 보다 조금 더 먼저 터졌으리라.
엄마 손가락 위에 자벌레가 꼼지락 거리며 움직인다. 몸을 오메가 형태로 잔뜩 웅크렸다가, 몸 뒷끝으로만 지지하고 머리는 하늘로 들어 여기 저기 기웃 거리다 머리를 손가락에 다시 대곤, 다시금 몸을 잔뜩 웅크리는데 그 귀여운 모습에 딸들이 반해 버린다. 서로 자기 손에 옮겨 달라고 경쟁을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 졌고 딸아이들의 두털거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깔깔거림이 대신 가득 차 있다.
손수건에 물을 적셔 주니 경은이가 에어컨 보다 시원하다고 무척이나 상쾌해 한다.
더 멀리가면 틈이 좁은 바위가 있는데 뚱뚱한 사람은 못지나가고 어린이들은 쏙 지나 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고 미끼를 던져 보았다.
좋아라 가자고 한다. 빙고.

올라 갈수록 걷기 힘들었다. 제법 험한 암릉이 시작되었는데 밧줄은 잡고 오르며 깔깔 거렸다. 어느 순간 경은이에겐 가슴 높이의 장애물들이 나타 나더니만 길을 망설이는 아줌마들 옆에 내 가슴 높이의 바위 장애물이 나타났다. 경은이를 번쩍들어 바위에 붙여 놓으니 거미처럼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가은이는 두번째 거미가 되었다. 정상이 가까워 지니 암릉 길은 좁아 지는데 사람들은 급격이 많아져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가은과 경은을 보며 저런 어린애들이 하며 지나간 사람만 다섯번이었다. 난 기억을 못하는데 경은이가 세고 있었다. 어느새 노력 끝의 보람이란 교훈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등산 투쟁이 시작이 되었다. 심박수는 올라가고 난 아이들의 안전까지 걱정을 하다 보니 신경이 곤두설대로 곤두섰다.
신록을 즐기며 봄날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집사람도 즐기기에서 견디기 모드로 전환이 되었다.
아이들은 불평을 내놓지도 못했다. 위기 의식을 본능적으로 느낀것 것이리라. 이젠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 험한 하고 사람들로 번잡한 길을 지나는 것 보다는 더 올라 정상을 거쳐 내원암으로 내려가는 것이 편한 길이 되었다. 우리들 인생이 그러하듯이 어느새 돌아 올 수 없는 길에 들어 섰고 이젠 앞으로 가며 활로를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경은이에게는 정말 걷기 힘들 길이었을 것이다. 몇걸음에 한번씩 자기 허리 또는 가슴에 차는 장애물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경은이를 들어 올려 놓고, 들어 내려 놓고, 안고 가다간 내려 놓고 걷게 했다. 가은이는 그래도 언니라고 혼자가 자기 갈 길을 스스로 잘도 간다. 엄마가 손만 잡아 주면 된다. 경은이는 커서 저나이가 되면 그 때도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 5년전 설악산에서도 가은이는 혼자 같고 경은이는 업혀 갔었다. 지금 경은 나이는 5년전 언니 보다 두살이나 많다. 막내는 막내인 것이다.

그런 막내가 손수건을 달라고 한다.
"아빠 땀 딱으세요."아빠 힘들어요? 제가 걸을께요"
조금을 걷다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 막내는 엄마 품에 안겨 조용히 속삭였다.
"아빠가 무척 힘들어요. 땀을 많이 흘려요"

난 힘들지 않았다. 꼬마인줄만 알았던 경은이가 대견하고 불평없이 걷고 있는 가은이가 자랑스러웠을 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637m의 수락산 꼭대기를 거쳐 무사히 내려 왔다. 내려와 비로서 가은이가 입을 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할아버지 집에서 솔이랑 노는 건데..."
경은이도 한마디 거들었지만 상으로 사준 옥수수 먹기에 달콤했으리라.

그 날밤 잠자리에 들기전 가은이는 가은이는 자벌레가 보고 싶다고 했다.
경은이가 말했다.
"아빠 수락산 말고 딴 산에 가요. 수락산 가면 다 가지 말고 계단 바위까지만 가요"

2006-05-08

서울끝까지 보였다

(1/2)
지난 일요일 아침은 청학리에서 맞았다. 간밤에 배앓이를 하다 잠든 집사람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나 역시 같이 잠을 설친 관계로 자명종에 잠이 깨긴 했지만 부팅이 잘 안되었다. 하늘이 뿌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어제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으니 공기가 맑겠군" 하는 생각을 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한시간을 더 자고 나서야 동터오는 여명을 놓친 아쉬움을 달래며 수락산 자락에 접어 들 수 있었다.
수락산 유원지에서 수락산 정상을 오르는 방법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계곡을 따라 가다 옥류폭포 내원암을 거치는 경로가 하나 있고 이것은 짧지만 경사가 급하다. 다른 하나는 산마루 간이 주차장에서 왼쪽을 빠져 능선을 타고 마당바위, 코끼리 바위, 철모 바위등 능선을 따라 가며 암릉을 넘는 경로인데 좀 돌아 가서 시간이 약간 더 걸린다.
날씨가 좋으니 능선을 타는 경로를 택했다. 계곡을 따라가면 좌우가 막혀 조망이 안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가다 능선에 올랐는데 조기 아래 호수 같은 것이 보였다.
나중에 200mm 망원렌즈로 확인해 보니 내가 호수 인줄 알았던 것은 팔당대교 부근의 한강이었다. 내려와 본 사진에서는 오른켠에 미사리 조정 경기장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정상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 보니 서울이 너무 작은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눈에 다들어 왔다.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 아파트들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분당인것 같았다.


남쪽은 밀집된 건물과 건물들이 초거대 도시 서울을 만들어 놓고 있었지만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동쪽을 바라보니 신록이 카펫처럼 깔린 산아래 골짜기로 집과 비늘 하우스가 정감있게 자리하며 끝없이 동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팔당대교는 가까이 보이는 편이었고 그 너머 한참을 너머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다. 산과 산 골짜기 사이 안개가 조금씩 머물른 곳도 있어 더 정감있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더 남쪽을 트니 시원스레 뻗은 북한산 자락이 인왕산을 만들고 남산을 떨구어 놓았는데 남산은 그저 뒷동산인듯 자그맣게만 보였다. 눈에 힘을 주고 찾아 보니 남산 높이라 자랑하는 63빌딩도 구별이 갔다.


싱그런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울만 하다. 능선을 따라 가며 일망무제 막힘없이 뻗은 조망들에 이미 기분이 좋아져 있었고 일찍 일어나지 못해 놓친 여명에 대한 아쉬움은 벌써 잊은지 오래였다. 깨끗한 날씨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며 한없는 기쁨이 밀려 왔다. 평소 죽는 다는 생각도 안하지만 살아있음을 감사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이 땅에 살아 숨쉬고 있음이 숨이 막힐지경으로 기쁜 환희가 되어 끓어 넘쳤다.
"내려가 식구들을 데려와야 겠다..."


(계속)